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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꽃, 우울
2021.09.25
W. 소라빵
당신은 눈을 뜹니다.
방과 후, 아무도 없는 교실입니다.
지금 시간은 7시 23분.
창에 쳐진 커튼에 노을의 붉음이 베여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린 커튼이 스치는 소리만이 들려옵니다.
그에 따라 붉은빛이 일렁이며 어두침침한 교실 안으로 흘러듭니다.
깜빡 잠이 들었나 봐요. 슬슬 집에 돌아갈 시간인데,
야마구치는 어디로 가버린 것일까요.
그때, 츠키시마의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립니다.
야마구치의 전화입니다.
츠키시마 케이:전화벨이 울리자마자 집어들었음에도 몇 초간 눈알을 굴리며 받는 걸 미뤘습니다.
"뭐야, 야마구치."
내심 반가우면서도 괜히 퉁명스럽게 답합니다.
잠시 침묵이 이어집니다.
작은 바람소리만이 츠키시마의 귀를 간지럽힙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야마구치의 목소리.
야마구치:긴 신호음 끝에 익숙하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바람빠지는 웃음소리가 새어나오다가 이내 웃는 걸 멈추고는 네 이름을 불러봅니다.
"츳키."
한 번더, 다시 한 번더. 반복해서 불러보고는.
"츳키, 정말 좋아해. 그러니까 우리, 다시 만나지 말자."
이내 전화를 끊어버립니다.
츠키시마 케이:"너, 무슨 짓을 하려는... 야마구치!"
야마구치는 쉽게 꺾이는 사람이 아니었을 텐데요. 야마구치는 제 시선을 갈구하면 갈구했지, 다시 만나지 말자는 소리를 할 사람은 아닙니다. 전화가 끊어진 화면을 몇 초간 응시하다가 이내 다시 전화를 겁니다. 머릿속으로는 야마구치가 어디에 있을지를 끊임없이 생각하죠. 이 시간이면 멀리 가지는 않았을 거고, 수화기 너머로 바람소리가 들릴 정도면....
커튼 너머로 사람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갑니다.
방향은 아래쪽. 누군가 추락합니다.
눈 깜짝할 사이였습니다.
그리고 들려오는 둔탁한 충격음.
평소라면 그냥 지나쳤을 만큼 아무렇지 않게, 무심하게 들려오는 소리였습니다.
평화롭게 흔들리는 커튼, 이마를 간지럽히는 산들바람,
아찔할 만큼 붉은 노을의 색채…
야마구치가 사라진 세상은 아무렇지 않게 흘러갑니다.
2021년 9월 25일, 그렇게 너는 순식간에 나의 인생에서 사라졌습니다.
…
당신은 눈을 뜹니다.
공기가 불쾌하게 호흡을 방해하는 것만 같습니다.
바람에 흔들리는 커튼 사이로 쏟아지는 햇빛에 눈이 따갑습니다.
오늘은 야마구치의 기일, 그 아이가 사라진 지 딱 1년이 되는 날입니다.
꿈에서 깨어나니 익숙한 천장이 반겨주네요.
몸을 일으키니 침대, 책장, 책상이 보입니다.
츠키시마 케이:"야마구치 녀석, 분명 보란듯이 그런 거지."
몸을 일으키고는 가볍게 스트레칭을 합니다. 근육이 깨어나니 조금은 상념을 떨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일어나 이부자리를 정돈하면서 혼잣말을 중얼거립니다. 침대 머리맡에 둔 같이 마트에 가서 산 알람시계가 매우 거슬립니다. 일찍 눈을 떠버린 김에 뭐라도 공부하면 좀 나아질까 싶어 책상 앞으로 가봅니다.
책들이 가득 꽂혀 있습니다.
책상 위에는 달력과 메모지 한 장, 빈 편지지가 놓여 있습니다.
츠키시마 케이:달력을 확인해봅니다. 뭔가 미리 적어둔 일정이 있었는지.
오늘 날짜에 '야마구치의 기일'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츠키시마 케이:"어이없네. 꿈에 나오지 않았어도 네 기일인 건 알고 있다고."
그 글씨를 지울까 잠시 고민하다 메모지와 편지지도 확인합니다. 공부하려고 했던 계획은 틀려먹은 것 같네요.
납골당의 주소와 가는 방법이 적혀 있습니다.
버스를 타고 한 번 환승해야 합니다.
편지지 제일 위에 야마구치에게. 라고 글씨가 적혀 있습니다. 야마구치에게 전할 편지일까요.
츠키시마 케이:어제 감상에 젖어 쓰려고 했던 내용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지만, 그저 이마를 짚고 한숨을 푹 내쉽니다. 의자에 앉지도 않고 허리만 굽혀 펜으로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잘 지내? 나는 잘 지내.'
몇 글자를 더 쓰다가 펜으로 찍찍 그어 지우고는 편지봉투를 찾아 책장을 눈으로 훑습니다.
책장에는 책들이 가득 꽂혀 있습니다. 그 옆에 봉투도 놓여있네요.
츠키시마 케이:편지지를 각을 맞춰 접어 봉투에 밀어넣습니다. 뒤숭숭한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서 뭔가 딱딱한 책을 읽기로 했습니다. 물리라든가, 고고학이라든가. 책장을 살펴봅니다.
"진짜, 바보 같은 녀석."
자료조사 혹은 관찰 판정
츠키시마 케이:
기준치: | 70/35/14 |
굴림: | 20, 67, 84 |
+2: | 어려운 성공 |
+1: | 어려운 성공 |
0: | 어려운 성공 |
-1: | 보통 성공 |
-2: | 실패 |
기준치: | 70/35/14 |
굴림: | 12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츠키시마는 책 한 권을 발견합니다.
제목은 '당신, 거기 있어 줄래요?' 입니다.
주인공이 자신의 연인을 구하기 위해 과거로 돌아간다는 내용의 소설입니다.
츠키시마 케이:특이한 제목에 끌려 책을 꺼냈다가는 책 뒷표지의 시놉시스를 보고 도로 집어넣습니다.
"저런 게 가능했으면 세상에 죽을 사람은 없었겠네."
그리고는 메모를 한 번 더 확인하고, 일정을 확인해봅니다. 빨리 납골당이라도 방문해야 할 것 같습니다. 가서 괜히 속죄를 해야 할 것 같다는 사념에 휩싸여 신경질적으로 편지봉투를 집어듭니다.
지능 판정
츠키시마 케이:
기준치: | 70/35/14 |
굴림: | 15, 68, 60 |
+2: | 어려운 성공 |
+1: | 어려운 성공 |
0: | 어려운 성공 |
-1: | 보통 성공 |
-2: | 보통 성공 |
기준치: | 70/35/14 |
굴림: | 74 |
판정결과: | 실패 |
맞아, 당신은 야마구치의 납골당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었죠.
분명 어젯밤에 가는 길을 알아보다 잠들었습니다.
츠키시마 케이:"맞다. 헌화는 뭐가 좋을까. 뭘 좋아했지...."
분명 그는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적어서 보내준 적이 있었습니다만, 그 추억을 헤집을 용기는 없습니다. 간단히 짐을 챙겨 방을 나서도록 할게요.
준비를 마치고 집 밖으로 나오면, 푸른 하늘이 펼쳐집니다.
한없이 맑은 깨끗한 여름날의 아침 하늘입니다.
그래, 분명 이런 풍경을 봤었죠. 그때는 그 아이도 함께 있었는데.
어떤 표정으로, 어떤 이야기를 나눴던가요. 분명 그때…
츠키시마는 등교 중이었습니다.
푸른 하늘과 아무렇지 않게 흐르는 구름.
눈이 따가울 정도로 내리쬐는 햇빛과 지면에서 올라오는 후끈한 열기.
어디선가 들리는 매미소리.
그 아찔한 푸름에 잠시 걸음을 멈추고 하늘을 올려다봤던 것도 같습니다.
듣기 판정
츠키시마 케이:
기준치: | 60/30/12 |
굴림: | 68 |
판정결과: | 실패 |
아까 꾼 꿈의 영향일까요. 무언가 스산하고 또 그리운 기분은 들지만... 그게 다입니다.
야마구치:뒤에서 크게 네 이름을 부르며 네게 달려갑니다. 안그래도 더운날에 뛰어서 그런지 땀방울이 이마를 타고 흘러내립니다.
"츳키! 늦었다고 혼자가는 게 어디있어. 조금만 더 기다려주지..."
츠키시마 케이:야마구치가 제 등을 만지거나 팔을 붙잡기 전에 몸을 돌려 그를 바라봅니다. 걸음을 멈추고 그의 움직음을 눈으로 쫓습니다.
"기다릴 만큼은 기다렸어. 대체 뭘 하다 이제 온 거야?"
야마구치:"오늘따라 알람이 안 울려서... 미안, 츳키!"
닿기도 전에 몸을 돌려 저를 보다 급브레이크를 걸어서 멈추고는 더운 날에 붙으면 아무리 절친이라도 짜증낼테니 네게 닿지 않으려고 조심합니다. 흘러내리는 땀을 닦아내고는 익숙하게 네 옆에 섭니다.
"그래도 부활동에는 안 늦어서 다행이지."
츠키시마 케이:"그러게."
아팠다거나, 넘어졌다거나, 밤을 샜다거나 하는 일이 아니라 단순 늦잠이라 다행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말을 삼킵니다. 먼저 발을 떼고 혹시 그가 풀이 죽어버린 건 아닌지 잠깐 표정을 살핍니다. 대충 멀쩡해보이니 살짝 앞장서서 가던 길을 마저 갑니다.
"숙제는 다 했지?"
햇빛은 여전히 뜨겁습니다.
그 아래를 걷고 있는 두 사람의 얼굴에 땀이 맺힙니다.
달콤한 향이 나는 것 같아요.
그래, 분명 너는 이렇게 나와 길을 걷고 있어야 하는데.
올해의 여름에도 츠키시마의 곁에 있었어야 했는데. 너는 어째서,
… …
눈을 깜빡이는 순간, 풍경이 뒤바뀝니다.
츠키시마가 있는 곳은 집 앞.
여전히 푸른 하늘에 아무렇지 않게 구름이 흐르고 있습니다.
여전히 요란한 매미소리와 간간히 지나가는 자동차의 소리.
바람에 흔들리는 줄지어 선 가로수의 잎들.
평화롭게 흘러가는 여름의 풍경입니다.
환각이라도 본 것일까요?
버스정류장은 멀지 않은 곳에 있습니다.
주위를 살피면 벤치와 버스노선표가 보입니다.
츠키시마는 벤치에 앉아 있습니다.
츠키시마 케이:노선표를 확인해봅니다. 타야 하는 버스는 몇 분 후에나 오나요? 조금이라도 빨리 집 근처를 벗어나고 싶습니다. 야마구치와 지겹도록 같이 지나다닌 길에서 도망쳐야 합니다.
이곳에 오는 버스들이 적혀 있는 노선표입니다.
츠키시마가 타야 하는 버스도 있네요. 그걸 타면 야마구치의 납골당으로 갈 수 있습니다.
아래 기둥 쪽에 주인 없는 자전거가 묶여 있습니다.
꽤 긴 시간 동안 묶여 있었는지 흙먼지를 뒤집어쓰고 있습니다. 군데군데 녹이 슨 부분도 보이네요.
그러고 보니, 그 아이도 자전거를 가지고 있었죠.
주인이 사라진 너의 자전거도 저렇게 아무렇게나 묶여 있을까,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해봅니다.
야마구치와 같이 그 자전거를 탄 적도 있었습니다. 작년 여름이었죠.
그때, 야마구치는…
야마구치는 갑자기 자전거를 끌고 나타났습니다.
서툴지만 들뜬 듯 자전거를 끌고 츠키시마에게 조잘거리며 자랑을 합니다.
야마구치:자전거를 끌고 오다 너를 발견하고는 이쪽이라고 알려주는 듯 자전거를 잡고 남은 손을 흔들며 반깁니다.
"츳키, 이쪽!"
자전거랑 너를 번가라보다가 슬쩍 운을 띄워봅니다. 막상 가져오긴 했는데. 이런 말 하면 어이없는 눈으로 바라보는 건 아니려나.
"츳키, 자전거 탈줄 알아? 선물 받긴 했는데, 매번 둘이서 걸어다니니까 타본적이 없어서..."
츠키시마 케이:"당연하지. 혹시 야마구치 네가 초등학교 때도 타본 적이 없다면 아예 세발자전거부터 시작하는 걸 추천할게."
그와 자전거를 내려보다가는 자전거의 핸들을 잡고, 브레이크를 눌러보고, 벨도 한 번 울려봅니다. 바퀴 상태도 그렇게 나빠보이지는 않습니다.
"뭐, 나쁘지 않은 자전거니까 중심만 잘 잡으면 넘어지지는 않겠네."
야마구치:"뭐? 세발자건거? 그건 좀 너무하잖아."
자신을 놀리는 건지 미간을 작게 찌푸렸다가 자전거를 확인하는 모습에 슬쩍 옆으로 피해서 편하게 볼 수 있게 해주고는 나쁘지 않다는 소리에 확인받은 마냥 웃습니다.
"그러면 있잖아, 혹시 가르쳐 줄 수 있어? 어려우면 히나타한테 부탁하고... 오늘은 다시 이렇게 끌고가야겠지만."
츠키시마 케이:머릿속에서 오늘 해야 할 일을 정리해보고는 그의 웃는 얼굴을 힐끔 봅니다. 쉬는 시간을 줄이고 일정을 좀 더 촘촘하게 짠다면 괜찮겠지요.
"히나타? 걔는 자전거를 가르칠 때도 슝이니 쾅이니, 그런 말로 가르쳐줄걸. 20분 정도 괜찮으면 직진하는 법 정도는 알려줄게."
야마구치:"그래도 우리들중에 자전거로 등하교 하는 건 히나타 말고 없으니까... 아, 정말? 고마워!"
풀이 죽었다가 가르쳐준다는 말에 금새 얼굴이 밝아지며 고개를 끄덕이면서 더듬이도 살랑거리는 모습을 보이며 이게 맞나? 하는 표정으로 자건거와 너를 번가라 보면서 자전거에 엉거주춤하게 올라탑니다.
츠키시마 케이:"내가 잡고 있으니까 발 떼서 페달에 올려. 핸들은 아래에 있는 브레이크랑 같이 잡고."
그가 올라탄 자전거의 안장을 붙잡고 버팁니다, 귀찮은 일을 떠맡게 된 것 같아 입술을 씹으면서도 그가 지시에 따르고 있는지를 확인합니다.
"그게 아니라. 이렇게."
그의 한쪽 손을 붙잡아 핸들을 쥐도록 합니다. 떨림이 전해져오는듯 해서 바로 손을 떼어내버립니다.
야마구치:"응, 응. 그러니까, 이렇게..."
들려오는 말에 고개를 반복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면서 발을 떼보려 해보지만 두 발이 땅에 닿지 않는 것이 무서운지 머뭇거리다가 네가 제 손을 잡아 이끌자 패달에 발을 올리는 걸 잊고는 끌려가듯 핸들을 잡고는 너를 보다 손이 떨어지자 애꿎은 제 손만 꼼지락거리다 어색하게 웃습니다.
"뭐든지 처음은 다 어렵나봐..."
츠키시마 케이:굼뜬 그의 모습을 보니 첫만남이 조금 겹쳐 보여, 안장을 잡고 있던 손을 놓습니다.
"이제 15분. 자전거 타기 싫어?"
요즘은 옆에서 하도 기어오르길래 좀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아니었는지도 모르겠네요. 혹시 이 녀석이 뭔가 신경쓰는 게 생겼는지 걱정됩니다.
"그런데, 자전거는 누가 준 거야?"
야마구치:"어?! 어, 아니, 그런 거 아니야!"
시간을 재고 있었던 걸까. 저도 모르게 소리가 크게 나오자 놀라 손으로 입을 막고는 고개를 가로젓고는 입을 막았던 손을 내려 놓고는 자전거를 바라보다 고개를 돌리고 멋쩍게 웃습니다.
"그냥, 부활동 하는데 좀 더 편히 다니라고 선물 받았어. 나는 츳키랑 걸어다니는 게 더 좋지만."
츠키시마 케이:"그렇게 말하면 오해 받아."
그의 마지막 말에 살짝 표정을 구기며 응답하고는 등을 툭툭 건드렸습니다. 할 거면 빨리 하라는 강요가 담긴 손길이었고, 간지러운 기분이 드는 말을 하지 말라는 거절도 겸했습니다.
"너, 저번처럼 늦게 일어나는 날에는 꼭 필요할 거야."
야마구치:"응? 무슨 오해? 그치만 사실인걸. 츳키는 싫어?"
전혀 이해를 못한듯 물음표를 띄운채로 너를 바라보다 등을 건드리는 손길에 자전거와 너를 번가라 보고는 한숨을 쉬며 자전거에서 내려오고는 뒷머리를 긁적입니다.
"하루만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건 역시 힘든가봐. 오늘은 그냥 가야겠다. 그... 그거는 그때는, 그때문이었다니까."
츠키시마 케이:예상 못할 일은 아니었지만... 아무래도 시간을 날렸다는 생각뿐입니다. 유약한 그에게 직접 말할 수는 없으니 가방을 고쳐 매는 것으로 답을 대신합니다. 나는 어땠더라. 형아가 알려줬었는데...
"그 때문이라니? 그렇게 말하면 내가 어떻게 알아."
살짝 신경질이 묻어난 목소리로 묻고는 목에 걸쳐둔 헤드셋의 전원을 확인합니다. 멀쩡하네요.
야마구치:"아니, 별거 아니야."
헤드셋을 확인하는 모습에 저 역시 구겨진 옷을 정돈하곤 자전거를 끌면서 옆으로 갑니다. 아무래도 다시 가르쳐 달라고 하기엔 어렵겠죠. 독학을 하던 히나타한테 부탁하던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돌아갈 길을 준비합니다.
"가자, 너무 늦어도 안 좋잖아."
츠키시마 케이:"그래, 가자."
자전거를 끄는 그는 평소보다 훨씬 느립니다. 헤드셋으로 귀를 덮으려다가 얼버무리는 그를 돌아봅니다.
"주말에 공원이라도 갈까. 제왕님이랑 꼬마 녀석이 주말에까지 연습하자 하는 걸 쳐내면 시간은 날 거야."
굳이 보조를 맞추지는 않고 평소의 걸음대로 걸어갑니다. 알아서 집에 잘 들어가겠죠,, 야마구치도.
이마에 맺힌 땀을 식혀주는 기분 좋은 바람. 턱을 따라 흘러내리는 땀방울.
페달이 돌아가고, 작은 자갈들이 바퀴에 짓눌리는 소리.
그 사이로 야마구치의 웃음소리가 들립니다. 분명 너는 환하게 웃고 있었겠지.
확인할 수는 없지만, 그래. 그랬을 겁니다.
꽃향기와 같은 달콤한 냄새가 코를 간지럽히는 것만 같습니다.
옆으로 스쳐 지나가는 풍경들이 아득하게만 느껴지고, 당신은...
……
덜컹거리는 충격에 츠키시마는 퍼뜩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츠키시마는 어느새 버스를 타고 있습니다.
시야에 가득하던, 빠르게 스쳐 지나가던 풍경들이 창밖으로 비칩니다.
츠키시마에게 버스를 탄 기억은 없습니다.
기이한 현상에 츠키시마 산치체크. (SANC 0/1)
츠키시마 케이:
기준치: | 65/32/13 |
굴림: | 51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버스 안을 살펴도 특별한 것은 없습니다.
잠시 덜컹거리는 버스에 몸을 맡기고 있으니, 츠키시마가 내려야 할 정거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옵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벤치와 노선표가 있는 작은 정거장이 눈에 들어옵니다.
츠키시마가 탈 버스가 오기까지는 아직 시간이 조금 남은 것 같아요.
슬슬 정오가 다 되어가는 시간입니다.
태양은 점점 더 뜨거워지고, 도로는 달아올라 아지랑이가 피어납니다.
제멋대로 일렁거리는 공기의 흐름. 온 세상이 녹아내리는 것 같습니다.
당신은 그런 왜곡된 풍경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그때도 야마구치와 이런 풍경을 보았죠.
수업이 일찍 끝나 부활동도 없었기에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습니다.
해가 한창 열기를 과시하고 있을 때 즈음.
일렁이는 아지랑이에 눈앞이 온통 하얘질 만큼 아찔했습니다.
현기증에 세상이 핑 도는 것만 같았어요.
그리고,
누군가 츠키시마의 눈앞에서 손을 흔듭니다.
하얗게 변해가던 시야 한가득 그 손짓이 담깁니다.
야마구치의 손입니다.
야마구치:"츳키? 츳키? 요즘 자주 멍하니 있는데, 더위라도 먹은거야?"
걱정하는 얼굴로 안색을 살피려는듯이 이리저리 시선을 굴리며 네 얼굴을 봅니다.
츠키시마 케이:"시끄러워, 야마구치."
가뜩이나 더운데 달라붙는 그가 조금은 귀찮습니다. 눈을 꾹 감았다 뜨니 어느새 그의 얼굴이 가까워져서 눈을 굴립니다.
"여긴 미야기잖아. 더위를 먹을 정도로 더운 날도 별로 없어."
야마구치:"미안 츳키!"
눈을 굴려 저를 피하는 모습에 냉큼 얼굴과 손을 떼어내고 네게서 한 걸을 떨어집니다. 더 귀찮게 굴면 한소리 들을지도 모르겠네요, 그렇지만.
"아, 다 흐른다. 츳키, 그거 빨리 먹어. 손 끈적해지겠어."
그 말에 손을 바라보니, 츠키시마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이 녹아 흐르고 있습니다.
츠키시마 케이:아이스크림의 형태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니 괜히 초조해집니다. 그를 힐끔 보고 고개를 끄덕이고는 입 주변에 흉한 자국이 남지 않도록 한 입 베어뭅니다.
"손수건 있어서 괜찮아."
야마구치는 같이 먹지 않는 건지, 그의 손을 살핍니다. 눈이 부신만큼 기억도 부숴진 느낌입니다.
야마구치:"역시 츳키야! 준비성도 철저하고."
아이스크림을 먹는 모습을 보고는 제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도 마저 먹습니다. 입에 문채로 이리저리 고개를 돌리며 주위를 둘러봅니다.
"해 보면서 하교하는 거 되게 오랜만이다. 매번 연습하냐고 달보면서 하교했잖아."
하교길에 봤던 달이나, 제 옆에 있던 달이나. 제 옆에는 달이 있는게 익숙해진 거 같아서, 달이란 말을 꺼내고는 힐끗 너를 보면서 웃다가 다시 시선을 앞으로 고정합니다.
츠키시마 케이:"그렇네."
그는 꾸준히 어리버리해서, 누군가가 챙겨주지 않으면 안 되는 듯합니다. 나이를 좀 먹고 나서는 좀 더 사랑받게 되었지만 좀처럼 마음이 놓이지 않습니다.
"뭐, 이따가 바보 녀석들이랑 같이 공부해야겠지만."
그의 시선이 향했던 하늘을 올려다보니 뜨거운 햇빛이 눈을 찔러 일순 또 눈을 감았습니다. 맑은 웃음소리가 들려 그를 돌아봤더니 그의 시선은 이미 자신을 떠나 있어, 그저 아이스크림을 한 입 더 베어물며 걸음을 재촉합니다.
길이 갈리는 갈림길. 야마구치와 헤어져야 할 시간입니다.
내일 또 만나자, 작별인사를 하고 돌아선 순간.
츠키시마는 또다시 현기증을 느낍니다.
그 해의 여름에는 빈혈이 유독 자주 왔었죠.
타는 것 같은 목과 머리로 피가 쏠리는 느낌. 어지럽게 일그러지는 시야.
눈앞이 하얗게 물드는 것 같았습니다.
야마구치:"츳키?"
뒤를 돌아보고 크게 손을 흔들던 야마구치가 당신을 발견하고 다가옵니다.
눈을 동그랗게 뜬 야마구치의 모습과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의 목소리를 마지막으로, 당신은…
버스기사:"... 생"
"학생!"
퍼뜩, 정신을 차려보니 눈앞에 버스가 멈춰서 있습니다.
납골당으로 향하는 버스입니다.
버스기사가 혀를 차며 말을 이어갑니다.
버스기사:"안 탈 거야? 날도 더운데 왜 거기서 자고 있어? 더위 먹으려고 그러지."
그래, 더위라도 먹은 게 틀림없습니다.
이미 죽은 너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는 것도, 그 기억이 그렇게나 생생한 것도.
더워서 헛것을 보는 것 말고는 설명할 길이 없잖아요.
전부 다 여름이 너무 더운 탓입니다.
츠키시마 케이:"네, 뭐."
대충 대답을 하며 버스에 올라타고는 또 다시 귀를 틀어막습니다. 계속 그의 죽음을 잊으려고 하는 것에 대한 복수인가. 야마구치에 대한 기억이 무의식에서 계속 부상합니다. 창밖의 풍경은 아무래도 흐립니다.
츠키시마가 버스에 올라타면 버스는 출발합니다.
덜컹거리는 차체와 그에 맞추어 흔들리는 손잡이들. 창문으로 들어오는 햇빛.
반짝이는 먼지 입자. 그 모든 것이 마치 꿈속처럼, 몽롱하기만 합니다.
종점을 알리는 방송이 흘러나오고, 버스가 천천히 정차합니다.
버스에서 내리면 납골당 건물이 눈에 들어옵니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 여전히 날씨는 찜통 같습니다.
츠키시마의 눈에 납골당 앞에 위치한 꽃집이 눈에 들어옵니다.
바깥에 놓인 꽃들도 뜨거운 열기에 축 처져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고 보니, 야마구치에게 전할 꽃을 사 가는 것도 나쁘지 않겠죠.
츠키시마 케이:"안녕하세요."
들릴 듯 말듯한 소리로 인사를 하며 꽃집에 발을 들입니다. 납골당 주변이라 그런지, 꽃들도 숨이 죽어 있는 것 같습니다. 뭐가 좋을까. 야마구치는 무엇을 좋아했지.
꽃집 안으로 들어서면 주인이 반갑게 맞아 줍니다. 여러 종류의 꽃들이 놓여 있습니다.
그 아이는 무슨 꽃을 좋아했더라,
고민하던 찰나에 한쪽에 놓인 범의귀 눈에 들어옵니다.
그래요, 분명 이 꽃을 좋아했을 텐데.
언젠가 야마구치가 했던 말은…
버스기사:"범의귀 꽃이 싫어."
옥상에서 도시락을 먹다가 툭하고 내 뱉어봅니다. 밥 다 갑자기 던진 말이 이상할것도 같지만, 그래도 이제는 정정해야 할 거 같아서. 너를 보면서 말 하다가 다시 시선을 도시락으로 고정합니다.
야마구치:"범의귀 꽃이 싫어."
옥상에서 도시락을 먹다가 툭하고 내 뱉어봅니다. 밥 다 갑자기 던진 말이 이상할것도 같지만, 그래도 이제는 정정해야 할 거 같아서. 너를 보면서 말 하다가 다시 시선을 도시락으로 고정합니다.
툭 던지듯이 그 아이가 말했습니다.
이상하죠,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일 좋아하는 꽃이라고 했던 것 같은데.
츠키시마 케이:"왜?"
그 꽃이 무슨 꽃인지 굳이 찾아본 적은 없지만, 갑자기 손바닥 뒤집듯 말을 바꾸는 그의 의중을 묻습니다.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을 꾸며내는 것 같아 다시 추궁합니다.
"왜냐고 묻잖아."
도시락 통에는 싫어하는 반찬만 남아 있습니다.
야마구치:"그냥."
왜냐고 묻는 질문에 어깨를 으쓱하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질문에 고개를 들어 너를 바라보다 시선을 이리저리 굴립니다. 무슨 이유를 덧붙여야 네가 납득을 할까 싶어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지만 어느 이유를 대도 납득하지 않을 거 같아 그냥 솔직하게 털어놓습니다.
"그게 중요해? 딱히 별 이유는 없어. 이제 마음에 안 드나 봐."
츠키시마 케이:물어보지도 않은 말을 해놓고는 괜히 심술을 부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습니다. 눈을 꾹 감았다 힐긋 바닥을 쳐다보고는 매실 장아찌를 집어먹습니다.
"그렇구나."
역시 야마구치는 바보같아. 뭔가에 휘둘리고 있어..
점심시간의 옥상이었습니다.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평화로운 풍경.
아래에서는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의 목소리가 들려옵니다.
기분 좋게 부는 바람에 그 아이의 머리카락은 살랑거리고… 꽃향기가 나는 것만 같습니다.
야마구치:"응, 츳키는 좋아하는 꽃 같은 거 없어?"
다시 돌아오지 않는 질문에 안도하는 듯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지우곤 되려 네게 질문합니다. 제가 말을 이어가지 않으면 먼저 말을 건내줄 친구가 아니라는 건 너무 잘 알고 있으니까요.
츠키시마 케이:"글쎄, 장미?"
야마구치를 기다릴 각오를 하고 제 도시락을 먼저 정리합니다. 이 녀석은 조금의 적막도 참기 힘들어하는 것 같습니다.
"엄마가 좋아하셔. 글쎄, 향기가 좋다면서."
기류를 탄 바람이 머리를 쓰다듬듯 지나갑니다. 야마구치의 머리칼이 흔들리는 건 시야의 외곽에서도 잘 보입니다.
야마구치:"장미도 색이 많잖아. 아, 꽃말도 다르더라."
도시락을 정리하는 모습을 보고는 마저 남은 것을 입에 밀어넣다가 남은 건 그냥 뚜껑을 덮어 자신도 정리합니다.
점심시간을 끝내는 종소리가 들려옵니다. 교실로 내려가야 할 시간이에요.
츠키시마 케이:"가자. 다음 영어지?"
야마구치는 생각보다 꽃을 좋아하는구나. 그에 대해 알게 된 건 많아졌지만 낯뜨겁게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는 않습니다. 몸을 먼저 일으키고는 그에게 손을 내밀어 줍니다.
츠키시마가 야마구치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바라본 순간.
툭, 툭. 붉은 액체가 방울져 떨어지고, 바닥에 부딪혀 흩어집니다.
야마구치가 당황한 듯 코를 붙잡고 있습니다.
야마구치:"아, 고마..."
말을 다 잇지 못하고 코에서 무언가 흐르는 걸 느끼고는 확인하자 제 코를 붙잡고는 네게 피가 묻을까봐 제게 내민 손을 반대손으로 밀어 거절합니다.
"미안, 요즘 자주 이러더라. 여름이라서 그런가."
한손으로 코를 붙잡고 남은 손으로 엉성하게 도시락을 정리하라며 늦기 전에 먼저 내려가라고 눈짓합니다.
츠키시마 케이:"자주 그러면 더 문제야. 너, 무슨 일 있지."
그렇게 좋아하던 꽃을 갑자기 거부하거나,자신에게 적극적으로 달라붙지 않거나. 요즘의 야마구치는 분명 이상합니다. 도련님 티 내냐는 비아냥을 들으면서도 손수건을 챙겨 다니길 잘했습니다. 그의 손에 억지로 쥐어 주고는 자리를 지킵니다.
"양호실에라도 데려다 줄게. 이 상태로 수업 들어가면 면학 분위기만 흐릴 뿐이야, 너."
야마구치:"여름이잖아, 그냥 서있기도 더운 날씨니까..."
제가 말해도 어이없긴한지 힘빠지는 미소를 지은채 너를 봅니다. 그래도 배구부라서 체력은 나름 일반 학생들보단 좋을텐데. 이런 변명이 먹히지 않을 걸 알지만 일단 늘여놓고는 제 손에 쥐어주는 손수건에 고맙다는 말을 하려다 들려오는 말에 제 입술만 깨물고 고개를 끄덕입니다.
"그러게. 미안 츳키. 나 혼자 갈 수 있어. 수업에 늦기전에 얼른 가."
야마구치는 멋쩍은 듯 웃으며 말합니다.
꽃을 닮은 웃음이었습니다.
온 세상을 가득 메우는, 향기로운 웃음. 금방이라도 물거품이 될 것 같은 웃음.
눈이 멀어버릴 것만 같아 눈을 깜빡이지도 못한 채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눈을 깜빡이는 그 순간,
…
츠키시마는 퍼뜩 정신을 차립니다.
서 있는 곳은 꽃집 앞.
꽃을 산 기억은 없습니다.
또다시 일어난 기이한 현상에 츠키시마 산치체크. (SANC 0/1)
츠키시마 케이:
기준치: | 65/32/13 |
굴림: | 63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츠키시마의 손에는 어느새 꽃다발이 들려 있습니다.
너를 닮은 꽃. 네가 좋아하던 꽃.
너의 환한 웃음이 그립습니다.
츠키시마 케이:희고 길쭉한 꽃잎에 보랏빛 점이 박혀있는 꽃들이 한다발 가득입니다. 자리를 채우기 위한 안개꽃 때문에 조금 흐려 보이지만... 이런 점 마저도 그를 닮은 듯해, 눈을 떼고는 바로 납골당으로 향합니다. 아마 야마구치는, 내가 너무 보고 싶어서 무언가의 메시지를 보내는 게 아닐까. 그런 터무니없는 생각을 하며 시선은 정면에.
납골당의 안치실에 들어서면, 줄줄이 늘어선 유골함이 보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이 이 좁은 공간에 꽉꽉 들어차 있습니다.
그중에, 야마구치의 함이 눈에 들어옵니다.
너의 인생이 이렇게나 작은 곳에 담겨 있다고 생각하니 이상한 기분이 듭니다.
누군가 먼저 다녀간 것일까요. 유리 너머로 먼저 놓여있는 작은 꽃이 보입니다.
같이 찍었던 야마구치의 어릴 적 사진도 놓여 있네요.
츠키시마 케이:"너 말야, 엄청 무례해. 못돼먹었어."
사진을 보니 그동안 부정해왔던 사실이 묵직하게 마음에 닿습니다.
"아직도 너에게 이유를 듣지 못했는데."
안경을 밀어 올리고 눈 앞머리를 꾹 누릅니다. 눈물을 흘리고 싶지는 않아 침도 삼키고 꽃을 둘 자리를 찾습니다.
사진 옆에 작지만 꽃 정도는 놓을 수 있는 자리가 있는 거 같네요.
츠키시마 케이:그 자리에 꽃다발을 두고는 그의 함 주변을 관찰합니다. 그의 사후를 둘러싼 것 중 자신에 관한 것은 얼마나 될지.
눅눅한 감자튀김과 배구공. 그리고 늘 붙어다녀서 일까요, 몇 장 있는 야마구치의 사진에는 츠키시마가 빠지지 않고 등장하네요.
츠키시마 케이:"짜증나."
붙어다닌 세월이 길어서인지, 아니면 오늘 하루 종일 계속되었던 악몽에 의해서인지 사진이 유독 선명합니다. 그 사진이 찍혔을 때의 대화, 분위기, 하늘의 색깔이 전부 기억날 지경입니다. 이내 안경 알 아래로 손을 넣어 눈을 가리고는 눈물을 훔칩니다.
사진 속의 야마구치는 우산을 들고 있습니다.
야마구치는 비를 좋아했던가요? 아니면 싫어했던가.
사진에서 빗소리가 들려오는 것만 같습니다.
지면을 두드리는 소리가…
그날도 빗소리가 주변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눅눅한 공기와 발치에서 튀어 오르는 물방울들. 갑작스러운 소나기였습니다.
구름이 가득 낀 하늘에서 끊임없이 비가 쏟아져 내렸죠.
츠키시마가 있던 곳은 학교 현관.
우산을 깜빡 잊고 가져오지 않아 곤란하던 참이었습니다.
츠키시마 케이:물론 몇몇 학생들은, 이를테면 타나카 씨라든가, 비를 뚫고 달렸지만, 그런 선택지는 고려조차 하지 않는 사람도 있기 마련입니다. 형은 집에 없을 시간이고 엄마도 약속이 있댔는데. 야마구치는 도통 보이지를 않습니다. 아쉬운대로 그에게 전화라도 걸어봅니다. 신호음과 빗소리가 엇박으로 섞여 들리는 것은 아무래도 거슬리죠.
뛰어가야 할까, 고민하던 중. 누군가 츠키시마의 옷자락을 당깁니다.
야마구치입니다. 같이 쓰자는 듯 그가 들고 있는 우산을 내밉니다.
야마구치:우산을 안 가져왔냐고 묻기도 전에 울리는 휴대전화에서 발신자를 확인하자 제 앞에 있는 사람이라는 게 웃겨 웃다가 너를 바라보다 장난치는 듯이 거절 대신 전화를 받고는 말을 이어갑니다.
"응, 츳키. 우산 안 가져왔어?"
츠키시마 케이:저에게 그런 행동을 할 사람은 야마구치밖에 없습니다. 돌아보니 아니나다를까, 야마구치였습니다. 바로 앞에서 조잘대는 목소리와 수화기를 타고 들려오는 목소리가 겹쳐 이쪽도 웃음이 새어나옵니다.
"시끄러워, 야마구치."
그가 내미는 우산을 받아들고, 키가 큰 쪽인 자신이 펴서 들어줍니다. 둘이 같이 들어가면 가방은 확실히 젖을 크기입니다. 묵직한 빗방울이 우산을 툭툭 때리고, 가까이서 그의 숨소리가 들리네요.
야마구치:"미안 츳키."
웃는 모습에 자신도 웃으며 말을 꺼냈습니다. 사실 어디가 미안한건지도 모르지만, 네가 말하면 뒤를 이어 제가 말하는, 일종의 둘만의 사인과도 같은 거였으니까요. 1인용 우산이고, 180이 넘는 남학생 둘이서 한 우산을 쓰기에는 확실히 좁은 느낌이었지만, 이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빗속을 걸어다면서 어깨와 가방이 다 젖어갔지만, 개의치 않았습니다. 손을 우산 밖으로 빼내 손바닥에 빗물을 담아보다가 이내 털어내고는 너를 바라봅니다. 생각보다 가까운 얼굴에 조금 놀라긴 했지만 이내 너를 보며 다시금 웃습니다.
"집까지 데려다 줄게."
츠키시마 케이:"비 맞아서 좋을 건 없잖아."
비가 얼마나 오는지 궁금하기라도 한 건가. 종종 야마구치는 알기 힘든 행동을 하는데, 그때마다 무시하는 것도 일입니다. 이 녀석과 이렇게 가까이 붙어 있을 일이 있었나. 아마, 머리 하나만큼 차이 날 때가 마지막이었던 것 같네요.
"기념사진이라도 찍어야겠네. 내가 간만에 바보짓을 해서 야마구치에게 휘둘린 날로."
잠깐만, 이라며 그에게 우산을 건네고는 사진을 찍습니다. 정작 자신의 얼굴은 우산에 절반 정도 가려지고, 그의 모습만이 제대로 찍혔네요. 다시 우산을 받아들고는 웅덩이를 밟지 않도록 조심하며 익숙한 하굣길을 걷습니다.
츠키시마는 야마구치와 함께 우산을 쓰고 걸었습니다.
우산을 두드리는 빗소리와 발을 디딜 때마다 들리는 찰박이는 소리.
가까운 거리에 간간히 스치는 팔. 꽃향기가 코 끝을 스칩니다.
어지러울 정도로 달콤한 향입니다.
그 향기가 주변 공기를 꽉 채우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건강 판정
츠키시마 케이:
기준치: | 45/22/9 |
굴림: | 27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츠키시마는 가벼운 현기증이 나는거 같습니다.
츠키시마 케이:속으로 욕을 삼킵니다. 이 향기는 무엇이며, 어디서 나는 것인지 짐작이 가는 바가 없습니다.
야마구치:"츳키?"
안 그래도 하얀 얼굴이 비를 맞아서 질려 보이는데, 안색까지 나빠 보여 네 안색을 보다가 안되겠다 싶어 우산을 잡고 있는 네 손을 잡고는 우산을 네 쪽으로 좀 더 기울입니다. 제 신발이나 바지가 젖는 건 개의치 않아 하며 오히려 네 걱정만 하면서.
"얼른 가자, 그러다 감기 걸리겠어."
츠키시마 케이:"이상한 꽃 향기 나지 않아? 확실히 익숙한 꽃은 아니고... 좀 야생화 같은 느낌인데."
야마구치가 달라붙어 오는 게 싫지만은 않습니다. 그도 요 근래 상태가 좋지는 않아 보이는데 누가 누구를 걱정하는지. 손에 힘을 주어 우산을 다시 수직으로 들고는 야마구치와 교문을 빠져나갑니다. 집까지는 쭉 포장도로니까 차라리 좋습니다.
야마구치는 놀란 듯 동그란 눈으로 츠키시마를 바라봅니다.
괜찮냐 묻는 떨리는 목소리가, 빗소리가 점점 멀어집니다.
…
츠키시마는 퍼뜩, 눈을 뜹니다.
츠키시마는 버스에 앉아 있습니다.
덜컹거리는 진동이 느껴집니다.
비도, 야마구치의 모습도, 익숙한 하굣길도 보이지 않습니다.
창 밖의 하늘은 한쪽 끝이 붉게 물들어가고 있습니다.
언제 이렇게나 시간이 지난 걸까요.
츠키시마 케이:"이렇게나 멀었나...."
계속 야마구치의 꿈을 꾸어서인지, 그가 옆에서 맞장구라도 쳐 줄 것 같았습니다. 낯선 풍경이 흐르고 흘러 몇 번 가본 적이 있는 곳으로 변모했습니다. 물론, 함께 간 사람은 야마구치였고.
마침 츠키시마의 집이 있는 정류장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옵니다.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더위가 한 꺼풀 식어 있습니다.
느긋하게 흐르는 뭉게구름과 간간히 불어오는 산들바람. 붉게 물들어가는 하늘. 익숙한 풍경입니다.
꼭 오늘처럼 깨끗한 하늘이 인상적이었죠.
그 풍경 속에는 야마구치 또한 있었습니다.
그리운 향이 나는 그 풍경 속에…
활짝 열린 창으로 간간히 불어오는 산들바람.
서서히 물들어가고 있는 붉은 하늘. 흔들리는 커튼과 함께 일렁이는 햇빛.
뒷문으로 막 교실에 들어선 츠키시마의 눈앞에 펼쳐진 풍경이었습니다.
야마구치가 죽기 일주일 전이었나요.
야마구치는 그의 책상에 엎드려 자고 있습니다.
새근거리는 숨소리가 들려옵니다.
츠키시마 케이:"오늘은 그 괴짜들이 괴롭히러 오지 않았나 보네."
도서관에 들렀다 양 손이 무겁게 돌아온 참이었습니다. 제 자리라도 되는 양 야마구치의 책상에 책을 올려두곤, 몸을 숙이고 그의 어깨를 가볍게 두드렸습니다.
"일어나. 언제까지 잘 거야."
진녹색 노을에 물든채 바람에 흔들리고 있습니다.
그의 눈동자가 노을 빛을 받으면 더욱 붉게 반짝일 거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야마구치가 자는 책상 위에는 노트 한 권이 펼쳐져 있습니다.
츠키시마 케이:자신이 선 위치에서 보기에는 거꾸로 놓여 있어 읽기 힘들지만, 노트의 내용을 확인합니다.
난잡한 글씨가 이리저리 적혀 있습니다.
'꽃', '병?', '병원에 가보기', '부모님께는…'
같은 단어들을 간간히 알아볼 수 있습니다.
츠키시마 케이: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머리가 좋은 편이라는 것은 이럴 때는 불쾌합니다. 멍청한 소리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후회할 짓을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저기, 야마구치. 누구 병문안 가?"
고개를 푹 숙여 그의 귓가에 대고 묻습니다.
야마구치:귓가에 울리는 소리에 움찔하더니 이내 잠에서 깬건지 눈을 뜹니다. 소리가 들렸던 곳으로 고개를 돌리니 눈 앞에서 가까이 보이는 익숙한 얼굴에 눈을 두어번 깜빡이는고는 이내 너를 보며 해맑게 웃습니다.
"아, 츳키네."
잠든 사이에 질문은 듣지 못한 듯 엎드려있던 몸을 일으키고는 눈을 비비면서 너를 올려다봅니다.
"아까 무슨말 했었어? 잠결이라 제대로 못들었어."
츠키시마 케이:"요즘 많이 피곤하냐고 물었어."
기분 탓인지 그의 얼굴에 근심이 담긴 것처럼 보입니다. 적당히 말을 맞춰주고는 그가 자신에게 정신이 팔린 틈에 노트의 글씨를 마저 읽어봅니다.
야마구치가 스크랩해둔 신문기사의 일부를 발견합니다.
츠키시마 케이:굳이 지워 둔 부분이 마음에 걸립니다. 딱 세 글자가 들어갈만한 너비. 저 부분을 읽는다면 그의 가장 내말한 부분까지 밝혀질 것 같아 지웠겠죠. 그렇다면 그 안에 들어갈 말은 너무 뻔합니다. 야마구치는 나를 '좋아'하니까.
*내밀한
지능 판정
츠키시마 케이:
기준치: | 70/35/14 |
굴림: | 50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그러고 보니, 야마구치가 최근에 자주 졸거나 잠드는 모습을 보입니다.
원래는 잠이 많긴 했지만, 이렇게까지 자주 잠들지는 않았던 것 같은데…
츠키시마 케이:또 다시 멍한 표정을 한 야마구치의 눈 앞에 손을 흔들어 보입니다.
"언제까지 비몽사몽할 거야?"
야마구치:"어? 어. 응. 아니야, 가야지. 응, 요즘따라 그러네."
제 눈앞에서 흔드는 손에 놀라 움찔하고는 대답을 하면서도 저도 모르게 말을 뒤섞어 가며 말을 하며 이내 노트를 가방에 넣어 하교 준비를 합니다.
"오래 기다렸어?"
츠키시마 케이:"아니. 종례 끝나고 바로 도서실 갔거든."
흥미 본위의 책 사이에 응급처치법과 상담의 기술이라는 제목을 단 책이 있다는 것은 비밀로 합니다. 노하라였던가, 아무튼 야마구치 앞자리 사람의 책상에 몸을 기대며 그가 정리하는 모습을 내려다봅니다.
"가자. 더 늦으면 선배들한테 혼나겠어."
야마구치:모르는 사이 제 책상에 올려져 있는 여러 권의 책들을 손가락으로 훑어내리면서 제목들도 가볍게 봤는지 무슨 책인지는 더 눈에 담 지않고 시선을 돌립니다.
"많이 빌렸네, 다 읽으려면 시간 좀 있어야겠다. 응응, 다이치 선배 평소엔 잘 챙겨주시는데 혼내실 땐 무서운..."
점점 말소리가 줄어가더니 이내 가방을 정리하던 손이 잠깐 멈추더니 위로 향합니다. 그러고는 고개를 푹 숙인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납니다.
"기다려준 거 미안한데, 먼저 가!"
입을 가리고 힘겹게 말하고는, 급하게 문을 열고 뛰쳐나갑니다.
연신 들려오는 기침소리와 다급한 발소리.
야마구치가 떠난 자리에는 달콤한 향이 남아 있습니다.
츠키시마 케이:두 번 생각하지 않고 바로 그를 따라갑니다. 학생들은 거의 다 귀가하거나 부활동에 간 상태라, 그의 흔적을 쫓기는 어렵지 않습니다. 야마구치의 상태가 좋지 않을 때마다 묘한 향기가 감돕니다. 무엇을 숨기냐고 추궁하고 싶은 마음 반, 조용히 넘어가고 싶은 마음 반으로 그의 뒤를 쫓습니다.
교실 밖 복도에는 붉은 햇빛이 창틀 사이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츠키시마가 화장실 쪽으로 가까이 갈수록 짙은 꽃향기가 납니다.
머리가 아플 정도로 진한 향기에 눈앞이 아찔해집니다.
화장실에서는 알 수 없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츠키시마 케이:"야마구치, 야마구치?"
연신 그의 이름을 부르며 주위를 살핍니다.
듣기 판정
츠키시마 케이:
기준치: | 60/30/12 |
굴림: | 67 |
판정결과: | 실패 |
화장실 안에서 흘러나오는 기침소리와, 작은 신음소리.
누구의 목소리인지 확신할 수 없습니다.
츠키시마 케이:그 소리의 주인이 야마구치가 아니길 바라며, 화장실 바로 앞에서 기다립니다. 주장에게 전화를 걸어, 짧게 상황만을 보고합니다.
"사와무라 선배. 죄송한데 야마구치 몸이 안 좋은 것 같아 상태 보고 갈게요. 늦어서 죄송하고요. 네, 네."
제 할 말만 하고 대충 맹꽁이대답을 한 후 벽에 기대어 생각을 정리하기 시작합니다...
그 장면을 마지막으로, 츠키시마의 눈앞은 하얗게 물들어갑니다.
균형을 잡기가 어렵습니다.
그렇게 당신은…
… 깜빡, 깜빡.
익숙한 천장이 보입니다.
츠키시마, 당신의 방이에요.
언제 돌아온 것일까요?
츠키시마는 침대에 쓰러져 자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방금 본 것은 꿈?
츠키시마의 망상에 불과한 건가요?
1년 전, 야마구치에게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끝없는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집니다.
츠키시마의 방은 아침에 나올 때와 같습니다. 침대와 책장, 책상이 있습니다.
츠키시마 케이:침대를 살펴봅니다. 조금 흐트러진 것이 신경을 긁습니다.
츠키시마가 깨어난 침대입니다. 이불이 아무렇게나 널브러져 있습니다.
침대 위에는 휴대전화가 충전되어 있습니다.
츠키시마 케이:충전기에 꽂은 기억도 없는데... 시간도 확인할 겸 휴대전화의 잠금을 풉니다.
"정말... 뭐가 안 되긴 안 되는 날이야."
잠금 화면을 푸니 휴대전화의 배경화면인 둘이서 찍은 사진이 보입니다.
츠키시마 케이:"진짜 꼴사나워...."
또 괜히 눈시울이 뜨거워져, 휴대전화는 알림만 지우고 도로 덮어둡니다. 그러고보니 지금은 가족들도 돌아왔겠네요.
"엄마, 형아. 있어?"
문을 밀고 제 방을 나섭니다...
거실에는 Tv가 켜져 있고,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 병이 발견된 지 대략 1년째, 인체에 큰 해악을 끼치지는 않지만 현재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불편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환자들은 공통적으로 꽃을 토하는 증상을 보입니다. 꽃의 종류는 천차만별입니다.
이런 독특한 증상에서 이름을 따와 해당 병을 '하나하키 병'이라고 명명했습니다.
병의 원인은 짝사랑이라는 의견이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습니다.
짝사랑의 감정이 해소되자 병이 나았다는 사례에 대한 보고가 여러 차례 있었으며…
기자의 목소리와 함께 Tv 화면에 병원의 모습이 비칩니다.
츠키시마 케이:얄미울 정도로 좋은 타이밍입니다. 세상이 자신을 놀리는 듯합니다. 홀린 듯 소파에 자리를 잡고 앉아 뉴스를 마저 봅니다. 뉴스에 집중하는 건 처음 본다는 형의 목소리는 무시합니다.
그러고 보니, 방금 꿈에서 본 그 날 이후로 야마구치는 일주일간 학교를 오지 않았습니다.
연락 하나 없이.
별 일 아닐 거라고, 다음에 만난다면 걱정했다고, 그래도 자신한테는 연락하라고.
그렇게 말하자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만난 너는, 하얀 국화 사이에서 환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츠키시마 케이:기껏 방 밖으로 도망쳤는데, 이쪽에서도 자신의 용기없음을 탓하는 것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야마구치는 정말 멍청했어."
가족들이 이상하다는듯이 이쪽을 돌아보았다가는 동정심과 애정이 듬뿍 담긴 눈으로 위로의 말을 건넸습니다. 다시 자기 방으로 도망쳐서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습니다.
그때, 야마구치를 찾아가 봤더라면 무언가 달라졌을까요?
그 병원에 가봤더라면…
츠키시마가 눈을 깜빡인 그 순간. 주변 풍경이 뒤바뀝니다.
츠키시마가 서 있는 곳은 병원 앞.
야마구치가 입원했던 그 병원입니다.
이것도 단순한 환상인 걸까요?
생생하게 느껴지는 오감이 혼란스러운 츠키시마. (SANC 0/1)
츠키시마 케이:
기준치: | 65/32/13 |
굴림: | 79 |
판정결과: | 실패 |
이성 -1 감소
하늘은 붉습니다. 지독하게 외로운 노을의 색.
몇 번이고 너를 떠올리게 만드는 색.
휴대전화 날짜를 확인해 보면 야마구치가 죽기 하루 전날임을 알 수 있습니다.
츠키시마 케이:환상이어도 좋고 꿈이어도 좋으니 이번만은 겁쟁이 같은 짓을 하지 않기로 마음먹고는 곧장 병원의 카운터를 향합니다.
"저기, 안녕하세요. 야마구치... 타다시 군의 친구인데 지금 면회할 수 있을까요?"
위협 제외 대인기능 판정
츠키시마 케이:
기준치: | 50/25/10 |
굴림: | 88 |
판정결과: | 실패 |
간호사:서류를 정리하다 들려오는 목소리에 고개를 들어 내용을 확인하고는 가로젓는다.
"그 환자는 지금 면회는 불가능 해요."
츠키시마 케이:"그럼 그, 편지 같은 건 전달해주실 수 있나요? 쪽지라든가. 전화로 하기는 좀 그런 게 있어서요."
대인기능 재판정
츠키시마 케이:
기준치: | 50/25/10 |
굴림: | 60 |
판정결과: | 실패 |
재판정
츠키시마 케이:
기준치: | 65/32/13 |
굴림: | 64 |
판정결과: | 보통 성공 |
간호사:"그 환자는 지금 진료중이라서 면회는 못하고, 두고 갈 물건은 104호 병실에 두고 가면 되요."
손가락으로 왼쪽 복도를 가르켜줍니다.
츠키시마 케이:"...감사합니다."
예의 바른 웃음을 짓고는 등에 맨 가방을 뒤져 노트와 펜을 꺼냅니다. 이번에 쓰는 편지는 좀 더 사실과 진심을 담아서.
'야마구치, 숨기지 않아도 돼. 나도 더는 도망가지 않을 거니까. 좋아해도 괜찮아.'
짧은 쪽지를 쓰고 노트의 페이지를 찢어 104호로 향합니다.... 너무 잘 보이지는 않지만 야마구치라면 찾아볼 곳에 두어야지.
야마구치의 병실은 1인실로, 지금은 비어 있습니다.
침대 위에 야마구치의 것으로 보이는 물건들과 구겨진 종이뭉치가 늘어져 있습니다.
침대 옆 선반 위에는 진료차트가 놓여 있습니다.
츠키시마 케이:진료차트를 확인해 봅니다.
야마구치의 진료 내용이 작성되어 있습니다.
츠키시마 케이:"끝까지 바보같이 착해서는.."
야마구치의 병에 대해 알게 된 츠키시마. (SANC 1/1d2)
츠키시마 케이:
기준치: | 64/32/12 |
굴림: | 31 |
판정결과: | 어려운 성공 |
이성 -1 감소
주변 공기가 무겁게 가라앉는 것만 같습니다.
이 사실을 야마구치도 알고 있다면, 그렇다면…
그 아이가 죽은 이유는…
눈앞이 캄캄해지며 세상이 어둡게 물들어갑니다.
병실의 풍경을 어둠이 집어삼킵니다.
츠키시마는 어둠밖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에 서 있습니다.
바로 눈앞에 있을 츠키시마의 손도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도 꿈인가요? (SNAC 1/1d3)
츠키시마 케이:
기준치: | 63/31/12 |
굴림: | 66 |
판정결과: | 실패 |
rolling 1d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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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 -1 감소
츠키시마 케이:"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 거냐고...."
주변을 둘러보면, 저 멀리에 작은 불빛이 보입니다.
빛을 향해 걸어가도 발을 딛는 느낌이 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분명 츠키시마는 빛에 가까워져 갑니다.
느낄 수 있습니다.
어두운 공간 속을 헤치고 나아가면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시간을 되돌리고 싶나?
공간 전체를 울리는 것 같은 위압적인 소리가 들려옵니다.
누구인지 알 수 없는 사람의 목소리입니다.
하지만, 어딘가 낯익은…
그때, 츠키시마의 머리에 잊고 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이제야 기억이 나나요?
당신은 누군가에게 빌었습니다.
야마구치가 죽기 전으로 시간을 되돌려 달라고.
그렇게 허무하게 너를 빼앗아 가지 말라고.
그리고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와 당신에게 물었죠.
당신의 답은 물론…
꿈이 아니에요, 츠키시마.
당신에게 주어진 마지막 기회입니다.
야마구치를 다시 만날 기회.
너와 여름을 함께할 기회.
그리고, 너를 살릴 기회.
어째서 잊고 있었던 걸까요?
잊을 수 있는 일이 아닌데도.
뒤죽박죽이었던 기억들이 맞물려갑니다.
어느새 츠키시마는 빛에 가까이 다가왔습니다.
네모난 문이라도 되는 듯, 어둠 속에 하얀빛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눈을 뜨세요, 츠키시마.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에요.
당신은 눈을 뜹니다.
방과 후, 아무도 없는 교실입니다.
지금 시간은 6시 53분. 창에 쳐진 커튼에 노을의 붉음이 베여 있습니다.
바람에 흔들린 커튼이 스치는 소리만이 들려옵니다.
그에 따라 붉은빛이 일렁이며 어두침침한 교실 안으로 흘러듭니다.
그 날. 바로 그 날입니다. 늦여름의 노을이 무척이나 아름다웠던 날.
네가 사라져 버린 날.
너와 함께했던 마지막 여름날.
교실 안에는 츠키시마만이 있습니다.
야마구치는 옥상에 있습니다.
교실을 둘러볼 수도 있고, 바로 옥상으로 향할 수도 있겠죠.
츠키시마 케이:교실을 둘러봅니다.
관찰 판정
츠키시마 케이:
기준치: | 70/35/14 |
굴림: | 11 |
판정결과: | 극단적 성공 |
야마구치의 책상에서 삐져나온 봉투를 발견합니다.
백색의 깨끗한 편지봉투입니다.
츠키시마 케이:순간 숨이 턱 막히는 기분이 들고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합니다. 멍청한 소리를 하는 멍청한 야마구치의 멍청한 편지를 구겨 주머니에 쑤셔넣고는 조용히 옥상으로 향합니다.
몇백 번을 오르내린 계단인데, 노을의 색에 젖어 있는 모습은 낯설고 무섭습니다. 서두를 필요는 없겠지요. 야마구치는 이런 데서는 또 겁쟁이라 아직 아무런 결정도 못 내렸을 테니까.
츠키시마는 옥상을 향해 갑니다.
복도를 지나치고, 계단을 올라갑니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 폐가 터질 것만 같습니다.
조금은 녹슨 철문 틈으로 붉은빛이 길게 뻗어 나와 있습니다.
문을 열자, 눈부신 햇빛이 쏟아집니다. 눈을 뜰 수가 없습니다.
기분 좋은 바람이 이마를 간지럽힙니다.
반사적으로 감았던 눈을 다시 뜨면 그림 같은 풍경이 펼쳐집니다.
아찔할 만큼 붉은 노을, 느긋하게 흘러가는 구름.
그 아래 서있는 야마구치.
야마구치는 눈물 고인 눈을 크게 뜨고 츠키시마를 바라봅니다.
츠키시마 케이:"야마구치."
그의 손목을 힘주어 잡아 끌고는 주머니에 넣어둔 편지를 꺼내 나지막한 목소리로 읽어냅니다.
"다시는 만나지 말자. 잘 지내. 이런 걸 보면 내가 기뻐할 것 같았어?"
야마구치:제 손을 억지로 잡아끄는 힘에 뿌리쳐 네 손에서 벗어납니다.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 반항이겠죠. 그래도 어쩌겠어요. 이게 내가 친구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인걸요. 일부러 그 감정을 친구라는 우정으로 덧씌워봅니다. 제 편지의 내용을 읽는 모습에 어색하지만 삐뚜름한 표정을 지어봅니다. 그래야 자신을 빠르게 포기할테니까요.
"...적어도 내가 없으면 아프지 않잖아, 그럼 배구 더 할 수 있으니까, 기쁘지 않아?"
츠키시마 케이:"저기, 뭘 좀 착각하고 있는 거 같은데. 아픈 건 너잖아, 야마구치."
남의 속도 모르고 속 편하게 저런 말이나 하고 있다니. 그 동안 입 안의 혀처럼 굴면서 눈치 빠른 척을 하던 건 전부 거짓이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구차하게 다시 네 팔을 잡고는 눈을 똑바로 맞춥니다.
"그리고 나에 대해서도 아무것도 모르네. 네가 좋아하는 사람일 텐데."
야마구치:"아니, 나랑 있으면 츳키도 아파. 현기증도 나고, 쓰러지기까지 했잖아. 그거 다 내가 옆에 있어서 그런 거니까."
다시 제 팔을 잡는 네 손을 두 번 뿌리칠 용기는 없었기에 막연히 잡혀있는 팔을 바라보다 좋하는 사람이라는 말에 고개를 들어 바라봅니다. 네 말에 티 내지 않으려 해도 티가 났다는 걸 알게 됐지만, 그게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일까요. 어차피 다 끝난 일인데. 미련까지 갖고 가기엔 너무 지쳤는걸요. 그러니까 이제는 보내줘야 해요. 그 누가 좋아하는 사람이 아파는 걸 옆에서 보고 싶어 하겠어요? 매몰차다고, 변했다는 소리를 들어도 다 너를 위해서라고 생각하며 일부러 못난 소리만 늘려놓습니다. 나를 미워하고, 놓아주세요. 혼자 앓는 건 더 이상 지쳤어요. 곪아버린 상처에서는 나를 사랑해달라 외치지만 입에서 나오는 건 너를 상처 입히는 소리만 나왔습니다.
"곧 죽을 사람인데, 이제 와서 그게 중요해?"
츠키시마 케이:"응. 안 아플 수 있으니까."
끝까지 자신만 없어지면 된답시고 입을 놀리는 그의 말에 한숨을 내쉬고는 눈을 느리게 깜빡입니다. 물론 야마구치가 말하는 것은 진실이고, 그가 자신이 겪은 일련의 증상의 원인이라는 것도 맞지만, 가끔은 비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할 때가 있는 법입니다. 더 이상의 저항은 없으니 조금 힘을 주어 자신 쪽으로 당깁니다. 그의 얼굴에서 읽히는 것은 절규와 분노와 수치, 그리고 애정.
"네 노트를 읽었어. 그리고... 너 정도의 머리가 있으면 무슨 뜻인지는 알아 들을 거라고 생각해."
야마구치:한숨을 내쉬는 모습에 역시 제 모습에 질렸는지 같은 생각이 듭니다. 자신을 당시는 모습에 힘없이 제게 끌려가지만 차마 네 얼굴을 볼 자신이 없기에 시선을 바닥으로 고정합니다.
"읽었으면 알 거 아니야, 아니 알면서 그러는 건가?"
자신 정도의 머리라니. 물론 네가 질색할 정도의 나쁜 수준은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사람이 생긴 건 자신도 이번이 처음이었기에, 무엇을 뜻하는지는 알 수가 없었어요. 그저 자신을 떠보는 말에 울컥하듯이 제 감정을 토해냈죠. 내가 이렇게 앓고 있다고. 나를 봐달라는 마음과 동시에 나를 버려달라는 마음을 가진 채로. 차마 너를 볼 용기는 없었습니다.
"내가, 츳키 좋아한다는 걸 직접 듣고 싶었어? 맞아, 나 츳키 좋아해, 좋아해, 좋아... 미안... 츳키. 미안해, 말하고 싶지 않았어. 말했다가 친구도 못하면 어떡해... 내가 츳키를 좋아는 건 혼자 참을 수 있는데. 츳키 친구로 츳키가 다른 사람 만나는 것도 축하 해 줄 수있는데. 근데, 나 때문에 츳키가 아프대. 그렇다는데 어떻게 거기에 대고 좋아한다고 말해. 나만 없으면 괜찮다는데. 그럼 나만 사라지면 되는 거잖아. 나를 그냥 학창 시절의 친구로 남기면 되잖아. 클래스메이트, 팀메이트정도로."
한 번 물꼬를 튼 말은 멈출 수 없이 넘쳐흘렀고 이내 눈물이 되어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울음소리와 말소리가 섞이며 눈물이 점점 바닥에 수를 놓아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할 정도의 흐느낌의 소리를 죽이려 남은 손으로 제 입을 막고는 고개를 푹 숙여버립니다.
츠키시마 케이:"나 봐, 야마구치. 네가 정말로 한심했으면 진작 버려두고 갔어."
그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것을 혼자 떠안고 있었던 듯, 눈물과 함께 말을 쏟아냈습니다. 사라지고 어쩌고 하는 것 이후로는 흐느끼는 소리에 먹혀 의미조차 식별할 수 없었습니다. 아무리 츠키시마라고 해도요. 아주 우는 얼굴도 보여주기 싫다는 것처럼 고개를 숙이는 그의 턱을 쥐고는 억지로 고개를 들어올립니다. 원래 쉽게 붉어지는 얼굴인데, 울어서 부은 기미와 등 뒤에서 비치는 노을이 겹쳐 마치 불타는 것처럼 보이네요.
"내가 너랑 똑같이 감정이 있고 누굴 좋아할 줄도 아는 사람이 아니라 무슨 기계나 신으로 보여? 아니면 내가 좋아하지도 않는 사람을 굳이 쫓아오고 바보같이 울면서 하는 말을 다 들어주는 성인군자라도 될 것 같아?"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 야마구치는 몇 번이고 직접 한 말인데 정작 자신의 입으로 말하려고 하니 목이 바짝 마르고 성대는 굳어버린 것 같습니다. 지금 상황에서 야마구치가 알아서 눈치채기를 바라는 건 너무 게으르고 또 멍청한 짓이겠지요.
"나도 좋아하니까."
불안하게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를 응시하다가 한 마디 더 붙입니다.
츠키시마 케이:"그럼 이제 짝사랑 아니니까 괜찮지?"
당신은 당신의 진심을 전합니다.
한 글자 한 글자, 그 아이를 생각하는 마음을 담아 또박또박 전달합니다.
몇 번이고 당신의 진심을 되묻는 야마구치의 목소리.
외로웠던 사랑에 종지부를 찍는 순간.
야마구치가 웃습니다.
꽃처럼 환하게, 눈앞이 아찔할 만큼 환하게.
바람을 타고 흘러오던 꽃향기가 물거품처럼 흩어집니다.
손끝에 닿는 생생한 감각, 꿈이 아닙니다.
야마구치:"정말 좋아해, 츳키."
늦여름, 노을이 지는 풍경.
그 풍경을 보아도 더 이상 외롭지 않습니다.
끝나가는 여름이 우울하지 않습니다.
두 사람이 함께하는 여름이니까요.
End 1. 여름, 우울의 끝.
야마구치, 츠키시마 생존.
두 사람은 몇 번이고 함께 여름을 맞을 겁니다. 더 많은 추억들을 쌓아가겠죠.
생환 보상 이성 회복 1d10
수고하셨습니다!
츠키시마 케이:=
rolling 1d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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